물류 이야기

CJ대한통운이 투자한 피지컬 AI, 어디까지 왔나

엄지용_커넥터스 2026. 6. 1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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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커넥트 : 

휴머노이드가 나왔는데물류 현장은 왜 이런가요?

지난 10일, 피지컬 AI 스타트업 ‘리얼월드’의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롯데호텔과 CJ대한통운, LG이노텍, AWS, 엔비디아에서 피지컬 AI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의견을 나눴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새끼손가락으로 상자 뚜껑을 여는 데모 시연이 열렸습니다.

로봇이 새끼손가락으로 상자를 열어 마우스를 집어넣는 모습. 원본 영상은 커넥터스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커넥터스

잠깐 설명하자면 리얼월드는 ‘로봇’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로봇이 스스로 보고, 느끼고, 판단해서 움직일 수 있는 두뇌. 이른바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는 회사입니다. 행사장에서 선보인 데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위로보틱스와 리얼월드가 공동 개발한 로봇 ‘알렉스’,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로봇 ‘RB-Y 시리즈’에 리얼월드의 파운데이션 모델 RLDX-1(리얼덱스-1)을 결합해 구동시킨 겁니다.

행사장에서 시연중인 RLDX-1 파운데이션 모델을 바탕으로 구동되는 로봇들 ⓒ리얼월드

행사의 주제는 손재주(Dexterity). 현장 분위기만 보면 로봇이 사람의 손재주를 따라잡는 미래는 이미 온 것 같았고, 공장과 물류센터엔 벌써부터 휴머노이드 로봇이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았죠.

 

그런데 행사장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는 지금 이 순간도 사람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이커머스 물동량을 처리하는 쿠팡의 물류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화 설비 도입이 부쩍 늘어난 건 맞지만, 여전히 많은 업무는 사람 손을 타고 있습니다.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의 발언에서도 이 현실은 드러납니다. 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공장 자동화율이 가장 높은 한국도 75%까지만 자동화가 됩니다. 일본·미국·중국은 여전히 절반 이상이 사람 노동입니다.

 

물류센터는 더합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25년 2월 발행한 글로벌 물류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창고의 80%는 자동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분류기·피킹·포장 장비 등 기초 설비를 갖춘 창고도 전체의 15%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상적인 자동화 창고는 전체의 5%도 채 되지 않습니다.

 

리얼월드는 바로 이 95%를 풀겠다고 나선 회사입니다. CJ대한통운, LG전자, 롯데, SK텔레콤을 비롯한 주요 전략적 투자자들로부터 누적 6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창업한 지 2년도 안 된 스타트업이 세계경제포럼 테크놀로지 파이오니어에 선정되고, 대만과 미국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파트너 미팅에 초청받았습니다.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지만, 한편에서는 그 기술력으로도 아직 극복하지 못한 현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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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넘지 못한 것들

물론 휴머노이드가 물류센터에 들어가긴 했습니다. CJ대한통운 군포 풀필먼트센터에 AI 휴머노이드 로봇이 완충재 보충 업무에 투입된 장면은 이미 알려져 있죠.

 

하지만 아직 로봇이 들어가지 못한 영역이 훨씬 많습니다. 고정된 위치, 반복 동작, 단순한 형태. 지금 로봇이 맡은 공정은 이 세 가지 조건의 전부 혹은 일부를 갖춘 곳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다양한 상품을 눈과 뇌로 인식하고, 세밀한 손기술이 필요한 공정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경제성도 아직입니다. 리얼월드의 로봇 파트너사인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이동형 양팔로봇 RB-Y1은 2024년 출시 당시 상업용 플랫폼 기준 1억 3천만 원에 판매됐습니다. 반면 물류 현장에서는 연간 3,000만 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로봇보다 훨씬 유연하게 움직이는 사람을 쓸 수 있습니다. 언젠가 로봇 하드웨어 가격이 내려가고 기술 수준이 사람에 미친다면 현장은 자연스럽게 바뀌겠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리얼월드가 극복하고자 하는 현실이 여기 있습니다. RLDX-1 파운데이션 모델이 탑재된 휴머노이드 로봇은 달걀을 깨지지 않게 집고, 민감도를 고려해 플러그를 꽂고, 주전자로 컵에 물을 따릅니다. 새끼손가락으로 상자를 여는 데모는 저도 현장에서 직접 봤습니다.

 

하지만 이런 손기술도 통제된 환경에서의 성과입니다. 상품 종류만 수만 가지가 넘고, 박스 크기와 무게가 매번 달라지는 물류센터에서 로봇이 다뤄야 할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이날 데모에 투입된 로봇들은 이런 복잡한 환경의 작업을 증명하진 못했고, 당장 리얼월드에 투자한 CJ대한통운의 물류센터부터가 여전히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행사장 현장에서 진행된 또 다른 로봇 데모 시연 모습. 원본 영상은 커넥터스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커넥터스

커넥터스 백브리핑 :  

그럼에도 기대하게 만드는 것

행사에서 구성용 CJ대한통운 자동화 담당 상무는 CJ대한통운의 피지컬 AI 전략 방향과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피지컬 AI는 답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기술이고, 그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언어모델처럼 인터넷에 답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CJ대한통운은 물류사업을 한 지 벌써 95년이 넘은 회사입니다. 그 시간 동안 현장 곳곳에는 우리 작업자들의 운영 노하우가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피지컬 AI의 해답이 있는 현장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장을 데이터화하고, 모델화해서 시스템으로 배포하고, 다시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고도화할 수 있는 기술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한국에서 우리가 만든 물류 운영 노하우를 전 세계에 수출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구성용 CJ대한통운 자동화 담당 상무 

대규모 언어모델 기반 AI는 인터넷에 쌓인 텍스트로 학습합니다. 피지컬 AI는 다릅니다. 유연하게 휘어지는 케이블을 조립하는 법, 무게 중심이 계속 바뀌는 주전자에서 컵으로 물을 따르는 법을 로봇이 잘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데이터는 인터넷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숙련 작업자의 손끝에 있습니다. 

 

리얼월드가 CJ대한통운, 롯데, SK텔레콤 같은 전략적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돈만 대는 투자자가 아닙니다. 수십 년간 현장에서 운영 노하우를 쌓아왔고, 지금도 현장은 굴러가고 있습니다. 리얼월드는 이들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 숙련 작업자의 동작을 캡처하고, 그 암묵지를 데이터로 만들어 로봇에게 학습시킵니다. 그렇게 현장과 기술 사이의 간격을 좁혀가고자 합니다. 

 

물론 그 간격이 완전히 좁혀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리얼월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풀고자 하는 문제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리얼월드의 치프 사이언티스트인 신진우 카이스트 교수는 기존 로봇 AI의 한계를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움직이는 물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 직전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손끝에 가해지는 힘을 느끼지 못하는 것. RLDX-1은 이 세 가지를 하나의 모델에 담으려 한 시도입니다. 

 

얼마 전 세계경제포럼은 리얼월드를 테크놀로지 파이오니어로 선정하면서 이들을 첨단 제조가 아닌 ‘AI 최우수 센터’로 분류했습니다. 특정 하드웨어에 종속되지 않는 범용 소프트웨어 인프라로서의 가치를 인정한 겁니다. 어떤 로봇 몸체에도 얹힐 수 있는 두뇌를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물류 업계에서 이 의미는 큽니다. CJ대한통운이 쓰는 로봇과 쿠팡이 쓰는 로봇이 달라도, 그 안에 같은 두뇌가 들어간다면 현장 노하우를 담은 데이터는 하드웨어를 갈아타도 살아남습니다. 

 

아직 멀었지만 방향은 분명해 보입니다. 물류센터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날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그날이 온다면 리얼월드의 도전은 비로소 혁신으로 증명될 겁니다. 우리가 옆 사람이 손가락으로 상자 뚜껑을 여는 걸 보고 놀라지 않듯, 로봇이 그걸 해내는 것도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닌 날. 바로 그날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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