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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커넥트 :
한 시대가 저뭅니다
며칠 전인 7월 10일, 홈플러스 합정점에 방문했습니다. 최근 홈플러스 매장이 전혀 매장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고, 유튜브에서도 그 난리 난 모습이 돌아다니고 있길래 직접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마주한 현장은 생각보다 더 심각해 보였습니다. 매대는 겉보기엔 꽉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상했습니다. 앞줄에만 상품들이 있었고, 뒷면에는 아무런 상품들이 없었고요. 그 앞줄에 있는 상품마저도 대부분은 홈플러스 자체 브랜드(PB)였습니다. 이건 마치 홈플러스 제품을 위한 거대한 전시장 같았죠.

정육과 수산, 계란 같은 신선식품이 놓이는 진열대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고객님의 성원에 힘입어 준비한 모든 물량이 소진되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는데요. 성원이 아니라 공급이 끊겨서 상품이 들어오지 못한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보였습니다. 심지어 라면 매대조차 ‘빈 박스’만 덩그러니 있었고요.

이런 모습이 안쓰러웠을까요. 정육 코너 한쪽에는 도마가 진열돼 있었고, 건어물과 수산물이 있어야 되는 곳에는 칼과 프라이팬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무 상품도 안 넣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넣은 모습입니다.

베이커리는 그나마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빵 냄새가 났고, 사람들이 서서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풍경이 오히려 이상했습니다. 옆 매대들은 죽어가는데, 여기만 평소처럼 돌아가는 느낌. 마치 병원 응급실 옆에서 팝업스토어가 열린 것 같은 위화감이었습니다.

매장이 오픈한 지 얼마 안 되는 오전 시간이었음에도 사람은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발걸음이 쇼핑하는 사람의 걸음이라기보다는, 뭔가 구경하러 온 사람들 같았습니다. 망하기 직전의 마트를, 저물어 가는 영광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러 온 느낌이었달까요.

합정역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서울 한복판입니다. 이 부동산의 가치는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자리에 서서, 홈플러스 PB 얼음으로 가득 찬 냉동고와 도마가 진열된 냉장고를 번갈아 보면서 저는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회사가 이렇게 지는구나.
제가 본 이 풍경은 정말 홈플러스의 마지막 모습 중 하나가 됐습니다. 사흘 뒤인 7월 13일, 홈플러스가 실제로 전국 매장의 문을 닫았거든요. 운영자금이 모두 고갈되어 상품 대금 지급은 물론 매장을 유지하기 위한 기초 운영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는 평가입니다. 서울회생법원이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한 지 딱 10일 만이었습니다.

AI도 모르는 유통물류 이야기 :
한때 정점을 찍었던 회사
홈플러스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닙니다. 2010년대 초반, 대형마트가 아직 전성기를 지나던 시절 홈플러스의 매출은 10조 원을 넘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3 회계연도(2013년 3월~2014년 2월) 홈플러스의 연결 기준 매출은 8조 9,000억 원으로 고점을 찍었고, 이 시기 영업이익은 3,383억 원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9월,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했습니다. 그 이후 홈플러스는 단 한 번도 2013년의 숫자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팬데믹이 정점이었던 2021 회계연도(2021년 3월~2022년 2월)부터는 매해 수천억원대 영업손실이 이어졌고, 그 끝에 지금의 사태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흔히 나오는 분석은 홈플러스가 이커머스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설명 뒤에는 조금 아쉬운 배경이 있습니다. 오히려 과거 홈플러스는 이커머스에 선제적으로 도전했던 회사에 가까웠거든요.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 온라인의 흔적
전직 홈플러스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식료품 홈쇼핑’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홈플러스입니다. 이건 영국 테스코의 영향이 컸습니다. 결과적으로 잘되지는 않았지만, 2008년에는 용인에 이커머스 물류를 위한 3,000평 규모 물류센터를 운영하기도 했다는 후문입니다. 쿠팡 로켓배송이 탄생(2014년)하기 훨씬 전, ‘풀필먼트’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올리브영 오늘드림과 배달의민족 B마트로 성공 사례가 증명된 MFC(Micro Fulfillment Center) 개념도, 사실 홈플러스가 선제적으로 도전했던 것입니다. 전직 홈플러스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2012년 무렵 테스코는 전 세계적으로 ‘NOTB(None Out The Back)’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말 그대로 마트 후방 창고에 쌓인 재고를 최대한 없애는 방향으로, 몇 년에 걸쳐 개선이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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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확보한 매장 후방 여유 공간에 홈플러스는 물류거점을 세웠습니다. 2019년 인천 계산점을 시작으로 안양, 수원 등지로 확장한 ‘점포 풀필먼트센터’의 기원이 여기 있습니다. 오늘드림과 B마트의 론칭이 각각 2018년 12월, 2019년 11월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홈플러스는 퀵커머스 태동기부터 이미 도심 물류센터를 활용한 온라인 사업을 고민하고 있던 셈입니다.
다만 이 전환이 진짜 효과를 내려면 조건이 하나 필요합니다. 그 거점을 채울 만큼의 온라인 주문, 즉 ‘수요’입니다. 아무리 후방 공간을 비우고 도심형 물류거점을 만들어놔도, 그 앞단에서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하지 않으면 그 공간은 텅 빈 채로 남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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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외곽에 이커머스 물류센터를 짓고, 마트 후방을 도심 물류 인프라로 쓴다는 아이디어는 홈플러스가 선제적으로 냈습니다. 하지만 그 인프라를 실제로 가동시킬 온라인 수요는 오히려 쿠팡과 네이버, 올리브영과 배달의민족 같은 플랫폼들이 만들어냈습니다. 씨는 홈플러스가 뿌렸는데, 꽃은 다른 곳에서 핀 셈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자랄 수 있었던 MBK파트너스 인수 이후 10년의 시간 동안, 홈플러스에는 그 토양을 가꿀 투자가 뒤따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직 홈플러스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아쉬움을 지목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커넥터스 백브리핑 :
밭을 내다 판 대가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투자가 없었다”는 진단은 그저 감정적인 아쉬움일까요, 아니면 근거가 있는 평가일까요.
전직 홈플러스 고위 관계자가 짚는 출발점은 인수 구조 그 자체입니다. MBK파트너스의 기본적인 문제는 차입금을 몇조원 당겨서 회사를 산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 인수 이후 홈플러스는 약 10년 간 이자를 갚는데 만 2조 7,000억 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통업은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업종인데, 빚을 갚는데 돈을 쓰다 보니 신규 물류센터는 물론 기존 자산을 개선할 여력조차 없었다는 겁니다.
홈플러스는 MBK파트너스 인수 이후 부채 상환을 위해 부동산을 팔아서 다시 임대해 쓰는 ‘세일즈앤리스백’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신호였습니다. 물류센터도, 심지어 매출이 높은 우량 점포도 팔았습니다. 이로 인해 금융비용은 줄었을지 모르지만, 그 자리를 운영비용이 대체했다는 것이 전직 홈플러스 관계자들의 평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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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형마트가 잘나가던 시기에는 이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있었습니다. 팬데믹이 찾아오기 직전인 2019 회계연도(2019년 3월~2020년 2월)에도 홈플러스의 영업이익은 다소 악화됐을지언정 1,601억원 수준을 유지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이 쿠팡 로켓배송으로 대표되는 빠른 배송 서비스 경쟁이 격화됐고, 이자 비용을 감당하기에 급급했던 홈플러스는 여기 제대로 참전하지 못했습니다. 덩달아 팬데믹이 터지면서 오프라인 수요는 빠르게 온라인으로 흡수됐습니다. 이미 게임은 끝났습니다.
“홈플러스 계산점 풀필먼트센터는 고작 40~50억 원을 투자하여 하루 1,300~1,500건을 처리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다른 대형 유통업체가 900억 원 이상의 돈을 투자하여 김포에 자동화 풀필먼트센터를 구축했는데, 이게 하루 6,000~7,000건 정도 물량을 처리했던 것으로 압니다. 900억 원이면 저희 방식으로 전국에 18개 센터를 확장할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비용 대비 효율은 이미 검증됐는데,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전직 홈플러스 고위 관계자
다른 곳에서 피어난 혁신의 씨앗
물론 이 모든 걸 MBK파트너스 한 곳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엔 조심스러운 구석도 있습니다. 2015년은 대형마트 업황 자체가 정점을 지나 하락을 앞둔 시점이었고, 그 직후 쿠팡의 성장과 코로나19라는 외부 변수까지 겹쳤습니다. 이 시기를 잘 넘긴 유통기업은 국내에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이마트와 롯데마트 모두 오랜 침체기를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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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쉬움은 남습니다. 홈플러스가 씨를 뿌린 이커머스 인프라의 발상은 시대를 앞서 있었습니다. 홈플러스는 그 씨앗을 키워야 할 10년 동안 정작 물을 주는 대신 밭을 내다 판 결과에 가깝다는 게 안팎에서 이 회사를 오래 지켜본 이의 진단입니다.
“롯데도, 이마트도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월마트는 아마존과 경쟁하면서도 나름의 대응을 해왔잖아요. 홈플러스와 같은 우량 기업이 10년 만에 파산 직전까지 몰린 건, 단순히 업황 탓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이나 조직 문화 같은 미시적인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장기적인 투자 책임의 문제입니다”
- 전직 홈플러스 고위 관계자
물류업계에서는 이후 많은 홈플러스 물류 담당 임직원들이 쿠팡으로 넘어가 못다 한 도전을 이어간 것을 기억합니다. 초기 쿠팡의 물류망을 예스24 출신 실무자들이 다졌다면, 전성기의 물류 인프라는 홈플러스 출신 인력들이 완성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오죽 홈플러스 출신 직원이 많았으면, 한때 쿠팡에 ‘홈팡’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였습니다.
씨는 홈플러스가 뿌렸고, 꽃은 다른 곳에서 피었습니다. 그 사이 홈플러스에 남은 건 텅 빈 매대와, 도마가 진열된 냉장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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